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벌지 전투 (문단 편집) ==== 비좁은 도로망 ==== [[프랑스 침공]] 때도 발생한 문제였지만, 아르덴 지역은 산악 지대인데다가 도로망이 빈약하기 짝이 없었다. 미군도 빈약한 도로 상황으로 피해를 본 것이 있으니 초기에 미군 부대들이 후퇴 과정에서 서로 엉켜서 많은 혼란이 발생했고 일부 부대는 도로상에 장비들을 유기한 사례들이 있다. 독일군은 이렇게 버려진 장비들을 유용하게 써먹었으며 공세 시간을 더 벌었다. 이것 또한 미군이 한참 고전하게 된 원인 중 하나이기도 하다. 게다가 숲까지 무성해서 객관적으로 보면 기갑 부대가 진격하기 곤란한 곳이다. 아울러 이 지역의 강은 유속이 빠르고 강행 도하를 할 만한 곳이 거의 없는 천연의 대전차호나 다름없는 탓에 일단 다리가 하나 파괴되면 먼 길을 돌아가거나 거기서 더 진격할 수 없는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그래서 아르덴 대공세의 전투 양상은 잘 닦여진 길과 도로를 확보하려는 독일군과 이를 기를 쓰고 막으려는 미군의 대결이었다. 당연하게도 독일군의 공격은 도로가 많거나 교차하는 요충지에 집중되었고 해당 지역을 수비하던 미군은 많은 손실을 입었다. 독일군은 [[프랑스 침공]] 당시에도 250km에 이르는 대규모 교통 정체[* [[경부고속도로]]의 [[추석|어떤 250km 길이의 구간에 있는 수십만 대의 차들이 오도가도 못한다고 상상해 보시라]].]가 발생했지만 그때는 결과적으로 병목에 시달리던 독일군이 아르덴 삼림지대를 빠져나올 때까지 저항을 받지 않은 상황 덕분에 작전을 성공시켰다. 하지만 아르덴 대공세 때는 삼림지대의 좁은 병목구간부터 미군의 저항을 받았고, 선두 부대가 저항을 받자 후속 독일군중 다수가 교통체증에 시달리느라 제대로 연합군과 싸우지도 못했다. 그리고 낫질 작전 당시와 아르덴 대공세 당시의 주력 전차의 체급이 달랐던 것도 한 몫 제대로 하게 되었다. 낫질 작전 당시에 주력으로 이끌었던 [[2호 전차]] 같은 경장비에서 [[판터 전차|판터]]나 [[티거 2]] 같은 운용하기 힘든 중장비로 바뀐 지 오래였기 때문에 안 그래도 빈약한 도로는 과중한 교통량과 전차들의 과도한 중량[* 2호 전차의 중량이 8.9~9t인데 비해, 판터의 경우 G형 기준 44.8t에 육박했으며 티거 2로 가면 제조사에 따라 68.5t에서 69.8t에 이를 정도였다. 기존에 비해 중량이 5배, 심할 경우 7.5배에 육박했으니 도로가 버티는게 더 이상할 지경.]을 이기지 못하고 공세 개시 몇시간 만에 [[개박살]]이 나 버렸다.[* 궤도 주행형 장비들(Ex: 전차)이 험지, 야지 주행에 좋다고는 하지만, 지면의 상태가 너무 좋지 않은 땅으로 움직이면 땅이 움푹 꺼진다. 그러면서 차체도 같이 슬슬 땅 밑으로 들어간다. 꺼진 땅으로 장비가 들어갔다면 대개 자력으로 나올 수 없으며, 빼내는 시간이 종일 걸릴 수도 있다. 또한 궤도형 중장비들은 원래 포장도로 주행에 부적합하고 속도도 끔찍하게 느리다. 그래서 군용 장비가 아니라면 단거리 이동 외에는 트레일러를 불러서 탑재시켜 이동하며 군용 장비도 전시가 아니라면 트레일러를 부르거나 철도로 이송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실제로, 위에서 언급된 [[오토 스코르체니]]의 위장 기갑 부대 역시 원래 목적대로 운용될 수 없었다. 판터 자체의 중량 문제와 교통 체증 때문에 작전 목표였던 적진 후방으로 갈 수도 없었기 때문. 결국 나중에 필요한 전선으로 전차가 이리저리 끌려가면서 흩어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